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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1년 5월 30일)

본문: 에베소서 5:18

제목: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설교자: 정창송 목사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5:18)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이며 지난 주일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바울은 술 취함과 비교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성령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살펴봄으로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1. 성령 충만이란: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그것(it)”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이나 신령한 감화력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지성, 감정, 의지를 가지신 인격이며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예수님)과 동등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세 인격이시지만 한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여기서 “충만”이라는 말은 “지배를 받는다”라는 의미로 성령 충만은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그 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요셉이 17세의 어린 나이에 역경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창39: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보디발 마저도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팔려와 노예로 한 많은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그 처절한 고통을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인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임재로 그 무서운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23:4절에 보면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삶을 참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삶의 위기와 역경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곧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힘입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2. 술 취함과 성령 충만: 본문18절을 보면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비교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술 취한 상태에서는 몽롱하고 무감각합니다. 분별력이 없습니다.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삶의 목적과 방향을 놓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 힘을 쓰며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상태는 다릅니다. 지혜롭습니다. 왜 지혜로워집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깨달아지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함으로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과 삶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뜻을 알려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의 큰 유익입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지면 삶의 파워가 생겨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혜로워집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에는 항상 “지혜”라는 말이 동반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6:3) 왜 그렇습니까? 성령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모든 믿는 사람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요16:13-14)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떠나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사는 것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초점이 분명한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행20:24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초점이 맞추어진 삶입니다. 바로 성령 충만함으로 인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삶이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엉뚱한 곳에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초점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신앙 생활하는 것이 즐거워집니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는데도 신앙 생활이 잘 맞지 않고 세상이 더 좋고, 세상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행복하게 보인다면 성령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