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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0년 09월 27일)

본문: 출애굽기 20:8-11

제목: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설교자: 정창송 목사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20:8-11)

십계명 강해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계명 중에서 네 번째 계명으로 안식일 성수에 대한 계명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안식일을 주신 목적과 성경적 안식의 참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안식일을 주신 목적: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신 십계명의 핵심 주제는 “관계”입니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인데 이 관계는 이해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진정한 행복은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없이는 사람과의 바른 관계는 결코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는 1-3계명과 이웃과의 관계를 다루는 5-10계명 사이에 4계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4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아주 중요한 계명으로 모든 계명과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8절) 이처럼 “안식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무입니다. 이스라엘 출애굽 공동체는 이 날을 손꼽아 가며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원문상 “안식일”로 번역되는 “샤바트”에 정관사 “”가 붙음으로써 이는 특정한 안식일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 안식의 날”이 되며, 이것은 천지 창조 사역 후 하나님께서 안식하던 바로 그 날을 가리킵니다(창2:1-3) 그리고 “기억하여”는 히브리 동사 “자카르”의 명령형 형태로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기억한다는 차원을 넘어 “상기 시킨다, 기억을 되살리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을 망각치 말고 영원히 상기하며 합당한 예배를 드림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나아가 출애굽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영원토록 찬양하며 안식을 잃어 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자유를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계명인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일하고 쉬는 것” 이것은 창조의 법칙 속에 내포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안식일의 개념을 놓쳐서 안식일을 범하면 창조의 질서가 무너져 우리 삶 가운데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 명령은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이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신앙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잘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겉으로는 지키는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의무적으로 또 근본 정신을 잃어버리고 율법적 준수로 소극적으로 순종을 해왔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율법을 지키기 위해 매우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너무 잘 지키려하다 보니까 수없이 세칙을 만들어 내어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여기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란 율법의 무거운 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실 때에 우리를 무겁게 그 짐을 지우게 하셔서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계명을 주신 목적은 우리를 살리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안식의 참된 의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에만 몰두를 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그런 율법적 접근으로 늘 안식일 하면 주일에 뭘 하지 말라는 것으로 많이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날이 아닙니다. 주일 날 그냥 가게 문을 닫는 것만이 온전한 주일 성수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안식”이라는 말은 “편안하다”라는 말과 “숨쉬다” 라는 호흡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안식을 누린다 라는 말은 “늘 숨가쁘게 , 바쁘게 지내온 사람이 숨이 가지런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아기들이 깊은 잠을 자고 난 후에 깬 모습이 안식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안식은 단순히 일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염려를 그쳐야 진정한 안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 중의 하나가 바로 “안식” 입니다. “한가로움”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세계 어떤 종교에서도 그들이 말하는 신적인 존재가 “너희들 좀 쉬거라” 말하는 종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기독교 밖에는 없습니다. 쉬라고 하는 명령! 얼마나 귀하고 축복된 명령입니까? 한가로움이란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고 일을 하면서도 자기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분주함입니다. 분주하면 실수를 많이 합니다. 분주하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분주하고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쉼을 누리지 못하면 정작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고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는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을 무시하면 우리 인생 가운데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안식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만드는 일종의 바이오 리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8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다쉬”는 “구별하여 성결케 하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날 하루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남의 창조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무엇이 죄입니까? 자신의 한계를 부인하고, 자기 마음대로, 내 식대로 사는 게 죄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순종은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한계 안에서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안식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성취를 위한 자기의 노력은 그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계명이 바로 이 4계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