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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날 때 기도하십시요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발견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탁하는 기도의 내용이 관계 속에서 오는 아픔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 보면 상대방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제가 볼 때는 본인에게 더 문제가 있음을 봅니다.

조금만 자존심을 건드려도 얼굴 빛이 바뀌고 상처를 받는 모습을 봅니다. 마음이 모질지 않아 상처를 받아도 속으로만 삭이고 상대에게 내색을 하지 못하고 뒤에 가서 분을 삭이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마음이 모질지 않고 여린 것과 온유는 다른 말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는 제자들을 보면서 크게 열받지 않으시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하십니다. 안이숙 여사는 이것을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해석을 합니다. 저는 이게 온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여유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면 무슨 상처를 받겠으며 무슨 갈등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부드러우면 상처가 안됩니다. 남이 뭐래도 괴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딱딱하면 공격에 상처 받습니다. 힘들어 집니다. 온유를 배워야 합니다. 원래 온유의 뜻은 “길들여진 인격” 이지만 그래서 힘이 있지만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온유이지만, 길들여진 인격은 부드러움입니다. 딱딱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험한 일도 상처없이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강하면 부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딱딱하면 죽어가는 것입니다. 계속 부드러워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부드럽지 않으면 짐에 눌려 나부터 죽습니다.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을 보면 내면에 분노가 있습니다. 화나는 이유가 자존심의 문제, 인정 못받음, 무시 당한다는 느낌, 섭섭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럴 때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정답입니다. 삼상 8장에 보면 사무엘이 왕을 세워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에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동안 백성을 위한 헌신, 충성을 생각하지 않고 왕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 이렇게 나를 버릴 있는가?” 하며 배신감과 하극상에  앓아 누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삼상8:6) 화날 때 기도하니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버림이 아니다, 나를 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같이 열 받아 하십니다. 화가 나십니까? 기도하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면 온유한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삽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말을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