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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고난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9월 09일)

본문: 사도행전 14:19-28

제목: 하나님 나라와 고난

설교자: 정창송 목사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14:22-23)

사도행전 강해 54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복음 증거에 매진하다가 더베를 끝으로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귀환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꼭 붙들어야 할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1.복음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루스드라에서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서 거의 죽을 지경에 처할 정도로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루스드라가 어떤 곳입니까?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함으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떠 받들었던 바로 그 곳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못마땅하게 여긴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쫓아와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후에 고린도후서11:24-25에서 바울이 지난 날 고난을 회상할 때 다시 언급할 만큼 바울에게는 참으로 크고 극심한 고통을 가져다 준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의식을 잃고 성 밖으로 던져진 바울이 일어나자 마자 다시 성 안으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바울은 곧바로 다음 날 또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 삼게 됩니다.(20-21절)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렇게 죽도록 돌에 맞아서, 그것도 전도하다가 그랬는데 다시 전도할 마음이 어떻게 생기냐 말입니다. 그것도 하룻밤 지내고 250리 길 더베로 가서 어떻게 다시 전도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난에 대한 바울의 신앙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난과 환난을 불행이나 저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제자도 혹은 제자 됨의 또 다른 표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인 더베는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입니다. 반환점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도한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버가로 돌아와서 제자들을 돌아 보았습니다.(24-26절)

왜 돌아왔을까요? 그것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그 곳에 있는 제자들이 큰 두려움과 혼란 속에 사로잡혀 있을 것을 바울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22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무슨 이야기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고난당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던 제자들에게 환난이 당연한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에게 있어서 고난과 환난은 바로 제자됨의 표지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편안함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개 예수를 믿으면 만사 형통이라고 가르칩니다. 복을 받고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이런 것만 가르칩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에게도 예수 믿으면 축복이 있지만 고난과 환난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복은 십자가를 통과한 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어려움에 부딪치면 감당을 못하는 것입니다.

왜 기복주의 세속주의에 빠집니까? 고난없이 영광만 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은 것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입니까? 십자가 지셨기 때문입니까? 십자가 지셨기 때문입니다. 영광도 영광 나름입니다. 십자가 뒤에 오는 영광이 진짜 영광이고 복이지 십자가 전에 있는 영광은 헛된 영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로 말미암은 이 고난을 이겨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바울은 이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돌에 맞는 그 아픔도 고통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복음은 하나님 나라 회복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극심한 고난과 핍박 가운데에도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다시 보시면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 하여도 결코 위축되지 않은 이유는 바울의 소망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바울은 사역에 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을 때에도 자만하거나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고, 또한 돌에 맞아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도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하러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또 다른 말로 정의하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들은 종종 이와 같은 사실을 잊곤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형통함과 건강함과 부요함만을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나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보리떡이나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빌게이츠의 모습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삶의 자리가 비록 높은 산과 같고 초막과 같고 거친 들과 같아도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찬양할 수 있는 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바울이 그 무서운 환난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당하는 고난과 역경은 고난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 가지고 바울처럼 돌에 맞는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모든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