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1년 11월 28일)
본문: 창세기 1:3-5
제목: 하나님의 창조 (4)
설교자: 정창송 목사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3-5)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and he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 the first day. (Genesis 1:3-5)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씨리즈 설교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첫 창조인 빛이 왜 소중하며 하나님께서 왜 빛과 어둠을 나누셨는가? 그 속에 감추인 창조의 비밀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첫 창조는 빛입니다: 하나님의 첫 창조는 빛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3절) 모든 것의 시작에 가장 먼저 빛이 있었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빛입니다. 그래서 혼돈과 공허와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을 밝힌 빛은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나오는 근원적인 빛입니다. 빛은 하나님 존재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빛 되신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빛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어떤 생명의 역사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어둔 마음”과 “밝은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왜 어둡습니까? 사탄이 빛되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4: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왜 우리의 마음이 밝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인 곧 하나님이신 예수의 빛, 하나님의 빛이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왜 소중합니까? 예배를 통해서 이 “예수의 빛”이 사람들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빛은 “태양, 별 빛”과는 다릅니다. 이 빛은 창조의 4일째가 아닌 1일 째의 “빛이 있으라”의 그 빛입니다. 이 빛은 영혼을 다시 살리며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체험했던 그 “빛”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빛,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면 심령이 환해집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구원은 이 “예수의 빛”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온 그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 “예수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이 열려” 그를 묶고 있던 어둠의 영이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위대한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예수의 빛은 곧 말씀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는 “말씀을 통해 예수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 빛을 거부하는 것은 죄입니다.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죄입니다. 말씀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한 예수의 빛이 비추면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무가치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의 빛이 우리를 살리고 새롭게 하고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2.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본문 4절 보시면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여기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말은 빛에 의해 보여지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빛 자체가 보기에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빛은 밝다는 개념 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빛은 물리적으로도 아름답고 그리고 세상을 밝히고 우리의 심령을 밝히는 생명의 빛이기 때문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신비한 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빛과 어둠을 나누어 서로 섞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눈다”는 동사는 창조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나눈다”는 의미는 “분리, 구분, 구별하다”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을 나누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눈다”라는 것은 무질서하고 형태가 없고 어둠의 것들을 구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분을 짓는 일은 창조의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빛과 어두움, 땅과 하늘, 낮과 밤, 물과 땅, 물고기와 새 등을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나누는 일을 통해서 혼란하고 무질서한 것들을 질서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질서를 잡는 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을 나누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눔을 통해 혼돈을 제거하셨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구분되지 않으면 참 혼란스럽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뒤섞여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분되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그래서 이 빛과 어둠을 나누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기질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이 섞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는 하나님의 기질과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기 때문에 빛과 어둠은 본질상 섞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빛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안 계시니까, 어둠에 머물러 있을 수 있지만(엡5:8), 그러나 정말 빛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그런 삶이 불편해 지는 것입니다(요1서1:5-7)
그러므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빛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영접하고 그 분 안에 살면 우리 안에 예수의 빛이 비추어서 의롭게 거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혹 여러분 안에 평생 예수를 믿었는데도 사는 방식이나 성품에 전혀 변화가 없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신앙 생활은 빛의 삶입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소중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의 복음의 광채가 우리 마음 속을 비추면 모든 어둠의 세력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빛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로 오십시요. 그러면 어둠이 뿌려 놓은 모든 인생의 상처와 고통과 아픔과 나를 지배하는 어둠의 사슬들이 끊어질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납니다. 빛이 어둠을 물리치듯이 말씀은 빛이 되어 이 모든 것을 물리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빛 앞에 우리의 삶을 계속 노출시켜야 합니다. 진리의 빛 안에서 점점 삶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