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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내지 말라 (3)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1년 4월 25일)

본문: 출애굽기 20:17

제목: 탐내지 말라 (3)

설교자: 정창송 목사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20:17)

십계명 강해 34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은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으로 “탐심 금지”에 관한 규례입니다. 오늘은 이 열 번째 계명을 통해서 탐심의 근원적인 문제와 왜 인간은 아무리 소유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이 열 번째 계명을 범하는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탐심은 영혼의 잡초입니다: 탐심은 모든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결코 만만히 다루어서는 안되는 주제입니다. 탐욕은 죄의 뿌리이기 때문에 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워야 할 주제입니다. 탐욕의 뿌리는 죄의 시작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깊이 뿌리 박고 있습니다. 그래서 탐욕은 마치 잡초와 같습니다. 귀한 식물들은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죽어버리는데 이 잡초들은 물을 안줘도 때로 망으로 햇빛을 차단해도 심지어 짓밟아도 뿌리를 잘라내고 뽑아내도 또 살아납니다.

 탐심도 이 잡초와 같이 그냥 두면 한없이 번져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불행과 비극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탐욕의 끝은 내가 탐하고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그 끝이 만족이 아니라 비극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탐심은 각종 악을 만들어 내는 죄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의 모든 죄악의 원인은 탐욕입니다. 이처럼 탐심은 순간 순간 머리를 들고 일평생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5:3에서 이런 표현을 씁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한마디로 바울은 탐욕의 치명적인 영향력을 말하며 그래서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고 강하게 외칩니다. 탐심은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입니다. 그러므로 이 열 번째 계명은 한마디로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제어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궁금한 것은 왜 인간은 아무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결코 소유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예수님도 사람의 생명이, 만족과 행복이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무소유”를 권면하는 말씀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결코 무소유를 주장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무소유를 인정하거나 훌륭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여러분! 소유에서 삶의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과 무소유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부류 모두 다 삶의 기준이 “소유”에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소유하면 행복하다” 이고 또 하나는 “소유가 없으면 행복하다” 입니다. 공통점은 둘다 행불행의 기준이 소유에 있다 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사도 바울은 이처럼 소유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복을 소유나 무소유에서 찾으려고 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 영혼의 만족: 우리 인간은 육으로만 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영혼육으로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마4:4)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그렇게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도 그 만족도가 며칠 못 갑니다. 여러분! 다 경험해 보셨겠지만 처음 집을 장만하고 너무 가슴이 벅차고 기쁘고 좋아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얼마나 오래 갑니까? 며칠 잠을 못 잘 수는 있겠지만…그 기쁨이 1년을 넘긴다 하면 결코 정상이라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영혼육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육이 있어서 며칠 간은 너무 좋고 행복해서 잠을 좀 설칠 수는 있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이 있습니다. 영(spirit)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은 세상의 물질로는 만족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풍성히 누린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탐심이라는게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이 열 번째 계명을 범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 열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은 탐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갈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약하고 식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다른 대체물이 끼어 든 것입니다. 우리가 이 탐심의 유혹을 이기려면 우리 안에 시42:1의 시편 기자의 고백이 정말 회복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잊지 마십시요. 탐심, 탐욕의 실체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 빈공간에 이 탐욕이 자리를 잡고 그 공허함을 채우려고 하는 그 안에 탐심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심의 주 원인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하여 생겼기 때문에 우리가 이 열 번째 계명을 지키는 길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탐심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생긴 죄입니다. 그것을 치유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In Christ”가 탐심을 이기는 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십계명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말씀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