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1년 4월 18일)
본문: 출애굽기 20:17
제목: 탐내지 말라 (2)
설교자: 정창송 목사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20:17)
십계명 강해 33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은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으로 “탐심 금지”에 관한 규례입니다. 오늘은 이 열 번째 계명을 통해서 탐심을 통제해야 할 이유와 탐심에서 자유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탐심을 금하는 이유: 탐심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인류 최초의 에덴 동산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완전하게 만들어 놓으신 기쁨의 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 놓으시고 아담과 하와가 그 파라다이스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딱 1가지 하나님이 금해 놓으신 것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누리고 있는 수많은 것에 대한 만족과 감사가 아니라 한 가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의 특징은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탐심은 터진 웅덩이 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좋으면 죄를 안지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탐심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면 인류 최초의 아담과 하와처럼 최상의 환경에서도 선악과를 넘보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열 번째 계명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전5:10을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누려 보았던 솔로몬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영어 성경에는 “은”을 “money”로 “풍요”를 “wealth”로 “소득”을 “income”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income(소득)으로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무슨 이야기 입니까? 인간은 채우면 만족이 되는게 아니고 오히려 채우려고 할수록 갈증은 더 깊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가져도 삶이 행복하지 못하고 늘 불평과 불만족 가운데 살아간다 라는 것입니다. 이게 탐욕이 가져다 주는 무서운 독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무엇이 부족해서 선악과를 탐낸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탄 마귀가 탐심을 심어 놓음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감으로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이 안되고 오히려 우리의 눈에 없는 것을 보게 만들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사하고 자족할 줄 모르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그것이 나를 지켜 주지 못합니다. 이 탐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은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8복의 말씀에서 첫 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치게 많이 가지면 오히려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성도의 바른 모습입니다.
2. 탐심에서 자유하는 길: 우리가 탐심에서 자유하는 길은 세상 욕심 다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욕심(desire)을 버리는 종교가 아니라 욕심의 방향을 바꾸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욕심을 버리기 위해 욕심과 싸우는 종교가 아니라 그 욕심의 관심을 땅의 것에서 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에서 영의 것으로 그 추구하는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팔복의 말씀에 보면 첫 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입니다. 예수님은 욕심없는, 탐심 없는 그런 가난한 마음을 복있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처음 네 가지 복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 네 번째 복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여기서 “주리고 목마른” 것도 일종의 거룩한 욕심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소유와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가난한 마음을 갖는데,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막 주리고 목말라 하며 거룩한 욕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탐심을 이기는 길이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은혜와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게 뒤집어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 없는 마음입니다. 반면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세상에는 그렇게 주리고 목말라 하니까 세상 탐심에 빠져서 죄짓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이 아주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탐심의 유혹을 이기려면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면 세상의 것들에 그렇게 욕심을 갖지 않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보다 더 가치 있는 것, 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탐내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죄짓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10번째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셔야 합니다.
내 의지와 정신력으로 이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세상의 물질로는 만족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물질의 많고 적음, 소유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바껴야만 탐심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탐심이 통제되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심령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욕심 없는 마음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는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