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이민 온지도 어느덧 31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민 초창기에는 눈 많이 내리고 매서운 혹한에도 나름대로 캐나다의 겨울을 즐기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마음으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도 들고 해서 그런지 겨울이 참 부담스럽고 별로 반갑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캐나다에서 겨울철 새벽 기도는 정말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열쇠 구멍이 얼정도의 추위라서 열쇠 구멍을 녹이고 들어갈 때도 심심챦게 일어났습니다. 금년에도 벌써 겨울 냄새가 납니다. 들리기 이야기가 이번 겨울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새벽 기도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고통이 있다 라는 것은 살아 있다” 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잃은 육체의 온도는 실내의 온도와 똑같다고 합니다. 방안이 20도면 육체의 온도는 20도이고, 방안이 10도이면 육체의 온도도 10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명을 잃은 육체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저항도 시험도 방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으니까 더위도 느끼고, 살아 있으니까 추위도 느끼고, 살아 있으니까 불편함도 느낀다는 것입니다. 죽은 육체가 부채질하는 것 본 사람이 없듯이, 결국 살아 있다 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달픈 일인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이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가고 우리 안에 믿음이 들어 가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반드시 저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교회를 잘 섬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저항이 있고 반대가 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6:9에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먼저 “선을 행하되” 하는 앞부분이 나오고 “낙심하지 말지니”라는 중간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하면 “선을 행하면 반드시 때가 되면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 “낙심”이라는 도전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된 우리들은 “선을 행할 때도 낙심은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 낙심을 이기기만 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다 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씀 붙들고 금년 캐나다 겨울 새벽 기도도 넉넉히 감당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