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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제자의 길 (4)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1년 10월 17일)

본문: 마태복음 28:16-20

제목: 참된 제자의 길 (4)

설교자: 정창송 목사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9-20)

참된 제자의 길에 대한 씨리즈 설교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지상 명령을 통해 세례의 소중함과 세례의 참된 의미를 통해 제자가 되기 위해 세례가 왜 필요한지 깊이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세례의 소중함과 제자: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면서 남기신 지상 명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지상 명령은 한마디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에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신자라면 이 사명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대사명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다해 전도하고 선교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모든 민족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전도는 단순히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 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말의 의미는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하고 제자가 되었다면 또 다른 제자를 낳아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가 예수를 믿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작업이 세례를 받는 일입니다. 19절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에서 세례를 베푸는 것은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하는 일을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막16:15-16절을 보면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라고 할 때 세례를 받는 사람이 그냥 단순히 우리가 주일날 받는 세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전도해서 한 영혼이 세례 받게 하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세례는 형식적인 의식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회개와 참된 신앙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여러 사람 앞에 믿음의 증표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 회심을 경험하고 신앙의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세례식입니다. 세상에서 죄의 종노릇하던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날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시작하는 고백이 너무 중요합니다. 이처럼 세례 사건은 세상에 속해 마귀의 손에 있던 죄의 종노릇하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온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2. 진정한 세례와 거듭남: 그래서 그 세례를 받는 과정에 분명히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죄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온전한 세례를 받을 때까지 인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는 요3:5절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 삼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평생에 하나님을 섬긴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듭남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3:4)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다시 태어남”(born again)으로 이해한 듯 합니다. 그래서 “늙어서 다시 엄마 뱃 속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냐”고 묻습니다. 니고데모가 멍청해서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은 “거듭남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깊은 의미를 알려 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으로 번역된 “아노센”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태어남”(born again)과 “위로부터 태어남”(born from above) 입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태어남”이란 뜻으로 사용합니다. 핵심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거듭남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를 못 보고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요3:3,5)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천국 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요 구원의 절대 조건이며 제자되는 필수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의 거듭남은 물세례와 성령세례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어 죄사함 받고 성령 받아 예수가 믿어지며 복음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믿어짐으로 이제는 말씀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벧전1:23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거듭남이란 죄된 본성을 죽이고 회개함으로 말씀의 사람이 되고, 말씀에 순종과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 “말씀의 성취”를 이루는 삶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거듭남이 있어야 천국 갑니다. 거듭남이 있어야 하나님의 다스림을 누립니다. 결국 거듭남이란 “죽어라 말씀 듣고 말씀의 사람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거듭남의 삶입니다. “위로부터 난 사람”은 그렇게 삽니다.  이게 세례의 의미이며 이런 은혜를 경험해야 비로서 제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적인 교회, 건강한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세례를 받는 사람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가 입니다. 이런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요 제자 만들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진짜 교회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제자 삼는 일은 단순히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된 세례를 통해 죄에 대한 회개와 온전한 신앙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비로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성취하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