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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격지 않은 에녹의 믿음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0년 02월 02일)

본문: 히브리서 11:5-6

제목: 죽음을 격지 않은 에녹의 믿음

설교자: 정창송 목사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11:5-6)

히브리서11장, 믿음장 강해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인류 최초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옮김을 받은 에녹의 믿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녹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옮기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모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에녹에게는 그 죽음의 저주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에녹의 생애는 신비하고 에녹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면 에녹이 어떻게 살았기에 에녹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채 하나님 나라에 가는 특권을 입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뭔가 위대하고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완벽한 삶을 살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행위로는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인정받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은 그 까닭을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다른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에녹의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면 에녹의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은 이어서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우리는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에녹은 인생을 지으신 목적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거”라는 단어는 “good reporter”(히11:2)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좋은 성적을 내는 인생을 살만큼 인정을 받았다(commended)는 말입니다. 어떤 인정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인 질문으로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병행구절인 창세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1-24) 그러니까 한마디로 에녹의 생애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은 다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2. 동행의 의미: 그러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동행이란 말은 단순히 “같이 걸었다”는 (walk with someone) 의미가 아닙니다. 마음에 안 맞는 사람과 여행을 해보십시요. 여행이 아니라 고통의 행군이 됩니다. 부부가 한 집에 산다고 동행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암3:3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동행은 한쪽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서로에게 기쁨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게 동행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동행의 삶은 기쁨이 있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동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뜻이 같아야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같아야 합니다. 각자의 뜻이 다르고 길이 다르다면 동행은 불가능합니다. 이 동행하고 제일 비슷한 말이 “다리를 묶다”입니다. 두 사람의 발을 묶고 걷는 “2인 삼각 경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넘어지지 않고 잘 걸으려면 두 사람이 보조를 잘 맞추고 박자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주도하고 한 사람은 힘 빼고 잘 맞추어 주어야지만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게 동행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바란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동행은 자신의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지속적인 훈련을 통하여 가능해 집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누가 누구에게 맟추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놔두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잠시 멈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 후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순종할 때 동행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자아가 죽는 경험을 계속해야 됩니다.

 그런데 에녹은 그런 동행의 삶을 1년, 10년, 100년도 아니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은 끊임없는 죽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 이틀이 아니고 일평생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라는 것은 수없는 “자기 부인(16:24)죽음을 경험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에녹은 날마다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에녹에게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놀라운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6절에 따르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뿌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만나주십니다. 에녹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그 분과 늘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게 에녹의 동행의 비밀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그 분과 동행의 삶을 살므로 죽음의 저주를 뛰어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우리도 내 생각과 내 고집을 버리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에녹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