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1년 7월 25일)
본문: 로마서 6:22-23
제목: 죄와 거룩 (6)
설교자: 정창송 목사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2-23)
죄와 거룩에 대한 씨리즈 설교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거룩은 생명입니다. 영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이유와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거룩을 요구하시는 이유: 우리의 인생을 망치고 우리를 불행하고 못살게 만든 것은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게 되면 부끄러운 열매를 맺어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21절)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면 “거룩함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자믹은 영생이라”(22절)
우리의 온전한 구원은 죄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표는 행복을 뛰어 넘어 거룩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보다는 “거룩”입니다. 레위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제사법, 성결과 정결에 대한 법이 많이 있는데 레위기의 핵심은 “거룩”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할례를 요구하셨습니다. 창17:9-14절에 보면 할례의 복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모든 남자들은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께서 할례를 요구하셨는가 하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 중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것은 “너희는 세상 사람과 구별되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라”라는 구별과 거룩의 표시, 하나님의 자녀된 증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지만 그러나 세상 식대로 살아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표식이 할례를 주신 의도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변질이 되어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구별된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무조건 할례만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으로 선민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착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롬2:28-29에서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바울은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이다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면 안된다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과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전에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에게는 이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선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그것을 잃었습니다 우리 안에 할례의 표시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마음에 할례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갈6:17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흔적”이 바로 “할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의 능력과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거룩한 삶: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이 되어 “욕심 따라 살지 말고 말씀 따라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 본능을 따라 욕심을 따라 살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들도 그 본능을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성도들이 받아야 할 마음의 할례! 곧 구별된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나님의 식과 법이 아니면 아무리 억만금이 생겨도 행하지 않고 그러나 하나님의 식과 법이라고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길을 쫓아 순종하며 사람이 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마음의 할례, 예수의 흔적입니다. 그것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삶입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종이 되어”의 삶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우리가 예수를 믿든 안믿든 열심히 공부하고 땀흘려 성실히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대접받고 섬김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입니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섬김을 받으려고 힘써 돈을 벌고, 공부하고, 그럴려고 출세하고 권력을 잡으려 합니다. 말로는 섬긴다 하지만 섬김 받고, 대접 받고, 남을 부리고 누릴려고 그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요.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배와 그물을 다 버려 두고, 자신의 삶을 다 내려놓고 주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녔던 제자들까지도 이것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누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다투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목적도, 제자가 된 목적도 예수님이 왕이 되면 한 자리 하겠다는 생각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만큼 섬김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그래서 이 섬김의 사람이 됨이 예수 믿는 우리가 받아야 할 마음의 할례입니다. 이런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기독교는 높아짐을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라 낮아짐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낮아짐이란 실력이 아니라 자세입니다. 실력은 높히고 그 힘으로 세상을 섬기는 것! 이것이 기독교이고 이것이 우리가 받아야 할 마음의 할례입니다. 이런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하나님은 우리가 살기를 원하십니다. 거룩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의 할례를 요구하십니다. 구별이 없어진 것을 우리는 세속화 라고 부릅니다. 세상과 구별됨이 사라질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거룩은 생명입니다. 신자가 거룩을 잃으면 그 시대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 거룩이 회복됨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