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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거룩 (4)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1년 7월 11일)

본문: 로마서 6:22-23

제목: 죄와 거룩 (4)

설교자: 정창송 목사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2-23)

죄와 거룩에 대한 씨리즈 설교 네 번째 시간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 라고 명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죄에 대한 태도와 인간이 죄를 부인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죄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인간의 비극과 불행의 근원적인 원인은 “” 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의 한 가운데는””가 있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죄의 문제를 다루고 노출시키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럽고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죄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모든 문제에 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죄의 심각성을 느껴야 합니다.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죄를 죄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서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름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또 예배를 생명보다 귀히 여기지만, 예배의 감사 감격이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에 대한 참회의 기쁨과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실체를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대하실 때에 육체의 질병보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죄를 보셨습니다. 육체의 병든 몸이 낫는 것보다 죄사함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한 예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 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질병이 다 죄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중풍병자의 경우에는 죄가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죄 사함 없이 육체가 치유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예수님은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이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마1:21)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사망과 저주 가운데 처해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홍 같이 붉은 죄가 눈 같이 희어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죄 사함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의 본성을 가지고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로 말미암아 심판 받고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조차 죄의 문제를 다루면 불편해 합니다. 이것은 정말 교회의 위기요 매우 위험한 현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를 시인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으면 죄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 죄는 반드시 우리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과 무지와 열악한 환경이 아니라 죄입니다.

2. 죄를 부인하는 이유: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존재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뜻밖에 그 진리를 잘 모릅니다. 놀랍게도 사탄이 제일 잘 압니다. 사탄은 정말 “죄의 삯이 사망이다”라는 사실을 100% 압니다. 그리고 100% 믿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끊임없이 딴 짓 안하고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선악과 따먹어라” “하나님께 불순종해라” “네가 주인되라” “말씀따라 살지 말고 네 마음껏 네 욕심대로 살아라” “하나님 섬기지 말고 나를 섬겨라” “그리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네게 주리라”(마4:8-9) 이게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 공산주의를 만든 칼 막스, 그리고 진화론의 이론을 만든 찰스 다윈과 같은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 하나님을 부인하며 부정하도록 만드는 일에 막강한 힘을 제공해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부정하는 곳에는 무엇이 따라 붙습니까? 인간의 죄에 대한 부정이 따라 옵니다. 결국 하나님을 부정하는 궁극적인 이유은 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부정하면 라는 기준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죄를 죄로 판단할 근거와 원인을 제거해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요즘 동성애를 인권으로 다룬다는 미명하에 동성애 자체의 죄악성까지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상의 문화 안에는 “반하나님적인 사상”의 흐름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서운 동성애의 죄를 죄로 아예 규정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죄라고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죄를 사회학적인 구조속에서 설명하려고 하고 진화 생물학에서는 죄를 유전자의 문제로 책임을 돌려 버립니다. 인간은 그냥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왜곡과 합리화를 한 뒤에 마음 놓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짓는 죄를 죄인줄 전혀 모르게 되어 양심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어 결국은 죄의 기준이 사라지고 죄의 왜곡이 일어남으로 세상은 타락의 극치를 이루어 심판의 끝을 향해 달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거의 갈 데까지 간 시대입니다. 사실 동성애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죄에 대한 기준이 약해짐으로 신자들도 세상 사람들이 사는 삶의 기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이 없어진 것을 세속화”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이 “구별됨” 곧 “거룩”은 생명입니다. 신자가 거룩을 잃으면 그 시대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죄란 섞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죄에 대해 민감한 자들이 되시기 비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죄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죄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 작은 죄라도 회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 있는 사람보다 깨끗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거룩이 생명이요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