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1년 9월 05일)
본문: 로마서 6:22-23
제목: 죄와 거룩 (12)
설교자: 정창송 목사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2-23)
죄와 거룩에 대한 씨리즈 설교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거룩은 생명입니다. 영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거룩을 회복하는 회개의 소중함과 참된 회개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회복의 출발은 회개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23절)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과 비극의 근원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죄에 대한 설교는 솔직히 무거운 주제이지만 그러나 죄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죄의 결과는 너무 치명적이고 무섭습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의 껍데기만 이야기하는 것이지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죄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합니다. 처리되지 않은 죄는 우리를 파멸과 불행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거룩은 생명입니다(22절) 신자가 거룩을 잃으면 세상과 구별이 없어져서 세속화됩니다. 그러면 그 시대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거룩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거룩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의 핵심이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이 거룩은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셨을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맺히는 열매입니다(22절) 이 거룩을 상실하면 삼손과 같이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거룩은 생명이고 능력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거룩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한 백성들이 됩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딤전4:5) 이 거룩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의 필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세상의 Good News를 기대하고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합니다. 그들이 바랬던 복음은 참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전혀 다른 복음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복음이 되심을 증거합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의 침묵을 깨고 나타난 세례 요한의 외침이 무엇입니까? 위로나 축복의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느니라”(마3:1-2) 그리고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400년의 침묵을 깬 뒤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굉장히 위험해 보입니다. 결국 세례 요한은 회개를 선포하다 헤롯의 의해 목 베임을 당합니다. 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회개를 선포했을까요? 당시 지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따듯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전파할 다른 주제도 참 많았을텐데… 그런데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진정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첫 출발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중요한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주범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살 길입니다. 모든 것을 고치는 길은 회개입니다. 회개 없이 회복되는 길은 없습니다. 회개 없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도 없습니다. 회개 없는 신앙생활은 가짜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회복의 출발은 오직 하나, 회개입니다.
2. 참된 회개: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그들의 공생애의 첫 외침은 모두 “회개하라”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고통의 원인은 죄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근본적인 회개 외에는 다른 답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시급한 것은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얻는 일입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메타노에오”는 “방향을 바꾼다”라는 의미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죄”란 “과녁을 벗어난, 표준에 미달하는 것, 경계를 벗어난 것”의 어원적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의 삶이 죄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회개란 방향 전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살았던 인생에서 하나님에게로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이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결단이 회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내 죄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자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서 회개합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요.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던 다윗도 죄를 인식하지 못하니까 남의 아내를 범할 뿐 아니라 충신이었던 우리야를 잔인하게 죽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킵니다. 그래서 다윗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우리가 죄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 죄에 대한 고백과 애통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쩌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닐지 모릅니다. 구원의 역사에는 반드시 회개가 동반됩니다. 그리고 회개가 없으면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 가운데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회개가 없다는 것은 돌이키려는 의도 자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고도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죽을지언정 회개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꼭 마음에 새기어야 할 것은 우리는 죄를 지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아 망합니다. 죄를 지어 망한 백성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아 망한 백성은 많습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하는 것이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왜 계속 심판을 미루시고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다림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때가 차면 심판하십니다. 우리 안에 복음이 들어오면 예수의 생명이 임하여 죄와 갈등하고 싸우는 수준이 아니라 죄와 싸워 넉넉히 이기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날 우리가 더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더 나은 프로그램이나 사역이 아닙니다. 더 깊은 회개를 하는 것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고, 교회와 이 땅을 살리는 길입니다. 회개가 깊어지면 살 길이 열리고 정말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이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