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행동의 제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 것도 하기 쉽지 않습니다. 은행도 식품점도 모두 다 사회적 거리를 두고 줄을 서서 한 명 나오면 한 명 들어가는 식으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너무나 불편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제 평생에 주일날 교회 문을 닫게 될 날이 오리라는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몇 주 동안 온라인으로 영상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의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로 인해 공예배의 소중함을 깨닫기보다 영상 예배가 주는 편안함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교우들이 주의 전에서 함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의 은혜를 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 코로나19의 역경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이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 모든 어려움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성도의 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절대 섭리를 믿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을 정녕 믿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모든 것” 속에는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기근과 칼과 전염병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놀라운 약속의 말씀 때문에 주의 백성들은 어려울 때도 소망을 품고 살아 갑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절망 중에도 소망을 품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롬15:13) “믿음이란 절망의 언덕에 소망의 집을 짓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망의 언덕에 무덤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의 언덕에 아름다운 소망의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이 코로나19가 주는 유익도 많았습니다. 제 경우는 아내가 강제적인 쉼과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누적되어 왔던 육신적인 피곤함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QT를 하고 무엇보다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안식년을 지켰다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 생활로 억지로 안식을 하게 됩니다.
이게 역대기의 시각입니다.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대하36:21) 억지 고난, 억지 안식을 통해서 황폐한 땅이 회복되고 무너진 신앙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억지 안식이지만 하나님께서 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지금은 시간 없다고 핑계 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은 다시 못 올 영적 충전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 마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 귀한 시간을 내용도 없는 드라마나 세상적인 쾌락으로 “안식의 시간”을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안식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오히려 기도의 시간, 말씀 묵상의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보다 더 좋은 때는 없습니다. 신앙은 반응입니다. 좋은 반응이 성패를 가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