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currently viewing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내려 오시니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내려 오시니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6월 10일)

본문: 사도행전 10장 24-48절

제목: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내려 오시니

설교자: 정창송 목사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서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10:44-46)

사도행전 강해 41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 구원을 위해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과 더불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는 도중에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고넬료와 그의 가족과 일행이 구원 받는 초대 교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회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누구에게 임하며 그 구원과 성령 받는 핵심이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은혜 받는 자의 특징: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했습니다. 이에 응하여 베드로가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집에 들어오자 마자 고넬료가 어떻게 합니까?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했습니다.(25절) 여기서 “엎드려 절한다”라는 것은 “경배하고 예배한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도에 대한 극심한 존경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더욱이 고넬료는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었기(5절) 때문에 더욱 존경심과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한 것입니다.

고넬료는 당시 로마 제국의 정예 장교로서 자기가 지배하고 있는 유대 민족의 한 사람에 불과한 베드로에게 절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머리를 숙이는 정도의 가벼운 인사가 아니라 발 앞에 엎드리어 겸손히 절을 했습니다. 또한 당당한 로마 군인이 일가 친척이 다 보는 앞에서 자기 권위를 세우지 아니하고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예의를 갖춘 겸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넬료 안에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뜨거웠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일으켜 세우면서 나는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26절)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묻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29절) 그랬더니 고넬료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여준 환상에 관해 말하고 나서(30-32절)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절) 얼핏 보면 잘못 기록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사람인 베드로 앞에 서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 앞에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만큼 하나님을 사모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실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니까 고넬료 가정에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또한 하나님 말씀 들을 때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복이 됩니다.

고넬료 가정에 임한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은혜 받을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이 모든 일을 보고서 비로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부르시고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깨닫습니다.(34-35절)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없으면 교회를 다녀도 성령의 체험을 못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라”(시07:9).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하나남을 사모하며 갈망하는 자를 알고 계시며 또 그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하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주린 마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는 매우 중요한 신앙의 요소입니다.

2. 구원의 은총과 성령의 역사: 사실 고넬료를 보면 다 갖춘 사람처럼 보입니다. 유대인도 아니면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매일 시간을 정해 두고 기도에 힘썼으며, 때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선행을 베풀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다 가족들 모두 그를 존경하고 그의 부하들에게도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분명 부족함이 있기에 주님은 그 부족함을 채워 주기 위해 베드로를 청하라 하셨고 그는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고넬료에게 무엇을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까? 고넬료가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절) 할 때 과연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그 베드로가 전한 말씀이 본문 34-43절 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44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 말”을 듣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만 있으면 우리 교회 예배 시간마다 성령이 충만한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러면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경험, 자신의 능력, 자신의 학식, 자신의 어떤 것을 드러내고 나타낼 때 거기서 능력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드러낼 때, 예수의 이름이 전해질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이 강단에서 이 말이 전해져야 됩니다. 다시 말해 이 강단에서예수가 전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가 우리 인생의 해답이요 우리 모두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예수가 전해질 때 그 가운데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시고, 그들의 마음에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성령께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시는 힘을 주십니다.(38절) 그 복음의 핵심 구절이 43절에 나옵니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넬료가 경건의 삶을 살았고, 기도하며 선한 일을 많이 했지만 그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었고 그래서 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반드시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이 세상에 속죄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3:10.23) 그래서 복음의 핵심은 죄사함 받는 것에 있고 이 죄 사함의 은총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시작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인정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전해지고 죄 사함의 복음이 받아들여질 때에 성령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성령은 말씀과 함께 임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믿고 살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 지 그 사랑을 알지도 못했고, 체험하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큰 신앙적인 어려움이었고 한계였습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베드로를 통해 죄 사함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들었을 때 비로서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 때 성령이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고넬료가 체험한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성령의 뜨거운 역사하심이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