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0년 12월 20일)
본문: 누가복음 2:8-14
제목: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설교자: 정창송 목사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0-11)
오늘은 구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의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하는 구주 탄생의 상황과 또한 구주 탄생의 의미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성탄의 기쁨이 점점 식어가는 이 때에 목자에게 임한 성탄의 기쁨이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이 무엇인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목자들이 구주 탄생의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까닭: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이 놀라운 구주 탄생의 소식을 하나님이 주의 천사들을 통해서 제일 먼저 알린 사람들이 목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은 계층 목자들이 이 은혜를 누렸다 라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을 보면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성경에 보면 사실 주의 영광이 두루 비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영광을 선지자도 아니고, 제사장들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목자들이 한 밤중에 양을 치다가 본 것입니다. 더군다나 구약 시대에는 죄로 더럽혀진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던 시대에 그 놀라운 영광을 보았으니 목자들이 얼마나 놀랍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멸시받는 목자들이 주의 영광을 보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천시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들은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의 시각에서 보면 율법을 지키기가 힘든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양을 치는 목자들은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만든 안식일 조문에 보면 지팡이도 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 주는 것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안식일 규례를 다 지키면 양을 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목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기록에 보면 목자들은 법정 증인도 못될 만큼 아주 천시받는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니까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당시 천시받는 목자들에게 주의 영광이 임하고 구주 탄생의 소식이 제일 먼저 임한 까닭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주 곧 그리스도 주가 되시는 메시야는 “너희를 위하여” 곧 목자들과 같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억눌리고 가난하며 멸시받던 죄인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61:1-2에 보니까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한마디로 모든 슬픈 자를 위해서 위로하러 오셨다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이 놀라운 구주 탄생의 복음의 소식은 마음이 상하고 온통 마음이 찢겨지고 아프고 슬픔으로 가득차 있는 영혼들에게 임한다 라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너무 인생이 힘들고 아프고 소망이 다 끊어진 분들이 계십니까? 성경은 바로 그 때가 우리가 구주 되시는 예수님을 만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모든 것이 다 잘 풀리고 근심 걱정이 별로 없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그러나 그로 인해 높은 마음 가운데 있을 때가 오히려 인생의 위기입니다. 주님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지고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을 때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낮아져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오히려 어려움의 때가 인생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왜요! 이 복음의 은혜가 필요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자기를 크게 여기면 절대로 주님을 못 만납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목자들과 같은 낮은 마음을 가져야 예수님 만나고 그 예수님 만나야 우리가 다 일어설 수 있습니다.
2. 천사들이 전한 복음의 소식에 대한 목자들의 반응: 본문 10절을 보면 천사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12절에 보면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는 이 기쁨의 소식을 목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유대인의 왕이요 인류의 구주인 그리스도께서 변방인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구유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믿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목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한시도 지체치 않고 서둘러 달려 갔습니다. 반면 예루살렘에 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시리라는 것을 알았고(마2:5-6) 또 그 소식을 들었지만(마2:2) 소동만을 일으켰을 뿐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제쳐두시고 목자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주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대제사장들 대신 목자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즉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자들이 누렸던 이 은혜를 누리려면 목자들과 같이 이 전해진 기쁨의 소식을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헤롯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던 것은 탐심, 탐욕, 권력 때문이었습니다. 혹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세상적인 욕심 때문에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누리지 못하고 힘들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인생이 고달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바울은 세상을 금수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후11장에는 바울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 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차라리 “죽고 싶다”란 말이 나올 법 한데도 바울의 입에선 정반대로 “항상 기뻐하라” 외치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롬1:16). 우리 모두도 비록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천사가 들려 주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고 기뻐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목자들과 같이 낮은 마음에서 예수님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평화가 임합니다. 그리고 이 귀하고 놀라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복된 소식이 들려지는 인생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날 정말 주님의 그 복된 소식이 우리 안에 다시 새롭게 회복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