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5월 13일)
본문: 엡 6:1-3, 창 22:9-12
제목: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설교자: 정창송 목사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을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성경은 자녀된 우리들이 부모님에게 효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효를 행하는 자에게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는 부모님에게 효를 행하는 것이 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며 복이 되는 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부모님에 대한 효는 믿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신 복 중의 최고의 복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세상에서 그 어떤 승리나 성공보다도 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때때로 그것을 잊습니다. 극단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맡겨 주신 가정을 훌륭하게 세웠다고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하고 큰 일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반면에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하였다고 할지라도 정작 중요한 가정을 소홀히 여기거나 가정 교육에서 실패하였다면 그 사람의 세상적인 성공은 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들에게 먼저 부모님에게 효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에게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1-2절) 그러면 왜 우리가 부모님에게 효를 행해야 합니까? 그것은 성경은 부모 공경을 단순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것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2절) 라며 계명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또 1절에 보니까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옳으니라”할 때 이 표현은 성경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이야기 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똑같은 절대적인 가치요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기본이요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입니다. 그런데 레19장에 보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이 거룩을 어떻게 실천해야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의 말씀들이 나오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바로 “부모 공경”입니다. 레19:28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느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그런데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잘 연결이 안됩니다. 사실 부모 공경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거룩을 지키는 항목으로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하시고 이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 공경은 하나님께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과 똑같은 영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님를 공경하라는 말 대신에 “부모를 경외하라”라는 놀라운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경외”라는 히브리 원어는 “야레”인데 이 단어는 원래 하나님이 목적어로 나올 때에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리에 부모님을 그자리에 세워 두시고 부모 공경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하는 그 무게 감으로 우리의 부모님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모님의 존재를 하나님처럼 무겁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만큼 성경은 부모 공경을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로 접근한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 공경은 단순히 우리가 “착한 아들이냐 나쁜 아들이냐”하는 정도의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강하게 표현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이냐 아니냐”의 차원에서 부모 공경을 다룬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저 사람은 믿음은 참 좋은데 부모에게는 함부로 해” 하면 이것은 실은 말이 안되다 라는 것입니다. 왜요! 효도는 믿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이 정도로 부모 공경을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2. 효의 믿음의 내용은 순종과 공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가지로 자녀의 부모에 대한 효를 언급합니다. 첫째는 부모님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1절) 둘 째는 부모 공경입니다. 바울은 부모 순종과 공경에 대해서 설명도 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효도의 기본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아무리 잘 해 드려도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효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말에 힘써 순종하십시요. 사탄은 인간의 모든 불행의 시작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사탄의 공략 일순위는 “불순종하는 자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인간 관계에서도 순종의 삶! 잘 듣는 태도는 가장 복된 태도입니다. 그런데 인간 관계 속에서 그 순종의 첫 번째 시작이 누구인가 하면 성경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로만 키워 놓으면 성경은 그 자녀는 반드시 잘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요. 참된 효도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거기에 약속하신 복이 임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 부모 순종과 공경의 본을 보인 한 사람이 나옵니다. 창22장에 나오는 이삭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백 세에 주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해석이 안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그리고 이 아브라함의 순종과 믿음 못지 않은 순종과 믿음이 나옵니다. 바로 이삭의 순종입니다. 창22:9에 보면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이삭의 나이는 20대 입니다. 어떻게 100세가 훨씬 넘은 노인이 20대의 젊은이를 묶을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삭이 묶인 게 아니라 스스로 묶인 것입니다.
이삭이 이해는 안가지만 아버지를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아버지를 정말 공경하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묶인 것입니다. 만약 이삭이 아브라함을 공경하지 안했으면 오히려 아브라함이 꽁꽁 묶이고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겠다는데 순종하는 아들이 이삭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런 관계는 이미 그 자체가 엄청난 축복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잊지 마십시요. 효도는 약속있는 첫 계명이요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효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땅에서 잘되고 약속의 축복을 누리며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효도는 믿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잘 섬겨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을 하나님을 대하시듯 무겁게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녀에게 하나님은 최상의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