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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통한 성숙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9월 30일)

본문: 사도행전 15:36-41

제목: 실패를 통한 성숙

설교자: 정창송 목사

바울이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15:38-40)

사도행전 강해 57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2차 선교 여행을 앞두고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를 놓고 서로 견해 차이를 보여 결별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과 헤어짐을 통해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의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신앙의 자세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다름과 틀림을 구별해야 합니다: 사실 바울과 바나바는 기가 막힌 팀워크를 가진 주의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공의회 뒤에도 다시 안디옥에 돌아와 유하며 함께 사역을 하였습니다.(행15:35) 그런데 유난히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던 바울이 바나바를 재촉하며 1차 전도 여행 때 세웠던 교회와 성도들을 다시 찾아가서 어떻게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방문하자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36절)

  그래서 시작된 것이 2차 전도 여행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5장 36절에서 바울이 위대한 전도자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한 가지 전도자의 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들이 어떠한가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의 씨를 뿌려 전도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하는지 그들의 소식이 너무 궁금했던 것입니다. 이런 애틋한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나바에게 형제들을 방문하기 위해 다시 떠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얼마든지 쉬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불편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 안에 목자 되신 주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복음에 붙들린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2차 전도 여행을 앞두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늘 본문 38절 이하에는 두 사람이 팀을 이루어서 잘 함께 사역하다가 돌연히 어느 순간 그것이 깨어지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바울과 바나바가 결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헤어졌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 38-39절을 보니까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다툰 끝에 결국은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13:13에 보니까 1차 전도 여행을 할 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마가 요한이 선교 중도에 도중 하차하고 맙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마가 요한의 그러한 과거를 보아서 그를 데리고 갔다가는 또 전도 여행에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하여 반대를 합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한번 더 기회를 주자고 하면서 데리고 가자고 주장합니다. 이 문제로 인해서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 그 다툼이 좀 지나쳤는지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논쟁합니다. 바울이 옳으냐 바나바가 옳으냐! 그러나 이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틀린 것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다툼과 헤어짐의 원인은 신앙의 본질이나 교회의 사명에 관한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마가 요한이라는 사람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섬길 때에 이런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기질과 성격과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다툼을 가지고 서로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일을 할 때 언제나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하면서도 서로 다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상대적인 것을 자꾸 절대화 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절대화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은 그들의 목표가 달랐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달랐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싸운 것이 아니라 방법이 달랐기 때문에 싸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는 바울은 바울 스타일대로 바나바는 바나바의 스타일대로 사용하십니다. 본문 35절까지는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하나님은 은사와 생각과 기질이 다른 두 사람이 헤어짐을 통해서 새롭게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계속 붙여 놓았더라면 이 갈등 때문에 계속 소모전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울과 같은 복음 전도에 열정인 사람도 있어야 되지만, 바나바와 같은 따뜻한 위로의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어야 교회 전체가 오히려 풍성해지고 상호 보완적인 은사를 통해서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본문이 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40-41절)

2. 다툼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성숙에서 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는 정말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몬1:24)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헤어질 정도의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마가가 그렇게 중요하다 말입니까? 큰 일을 놔두고 헤어질 정도로 중요하다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마가라는 한 미성숙한 사람으로 인한 갈라짐이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미성숙한 며느리 한 사람이 그 아들과 그 어머니를 갈라 놓을 수 있습니다. 미성숙한 며느리 한 사람이 집 안에 들어와서 형제 사이를 갈라 놓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미성숙했던 마가에 대해 바울의 태도가 변화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마가는 자신으로 인한 이 다툼과 헤어짐을 성숙의 기회로 삼고 일어섬으로 나중에 이 마가가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우리도 마가와 같이 미성숙함으로 다툼과 헤어짐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통해 믿음의 성숙을 이루는 축복된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를 섬기고 주의 일을 할 때 다름으로 인한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서로를 품을 수 있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만남과 헤어짐의 성경적인 원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미성숙한 부분이 있으면 마가와 같이 그것을 성숙의 기회로 삼고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