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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관이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다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6월 03일)

본문: 사도행전 10장 9-23절

제목: 선입관이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다

설교자: 정창송 목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10:14-15)

사도행전 강해 40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초청할 것을 명하신 주께서 이어 베드로에게도 환상 가운데 임하셔서 이방인 고넬료의 청에 기꺼이 응하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환상을 통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무엇인지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선입관의 함정: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베드로는 당시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제 육시 곧 정오에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 갔습니다. 이걸 보면 베드로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넬료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는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시간이 정오였으니 베드로도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그 때 다른 사람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10절) 기도하는 베드로는 배도 고프고 음식 냄새가 나서 먹을 것 생각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눈 앞에 먹을 것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에게 나타난 환상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환상 가운데 본 것은 이상하게도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부정하고 속된 짐승들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그런 짐승들이었습니다.(11-12절)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하늘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음성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13절) 베드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유대인들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속된 것들을 한번 만졌다 하면 부정해져서 다시 깨끗해 지려면 여러가지 복잡한 정결의식을 행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단호히 거절을 합니다.(14절) 사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기록된 율법에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것을 이제 와서 잡아 먹으라고 하니 얼마나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그 음성이 주의 음성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거절을 합니다. 지금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베드로가 정통 같고 하나님이 오히려 이단 같이 보입니다. 그것도 한번만 이런 일이 있어도 깨달을 만한데 세 번씩이나 동일하게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베드로가 거절을 합니다. 이걸 보면 베드로의 생각과 편견이 얼마나 강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15-16절) 세 번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 베드로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의아해 있을 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 와 베드로를 청합니다.(17-18절) 그 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셔서 “의심하지 말고 가라” 말씀하십니다.(19-20절)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2. 선입견을 깨는 길: 만약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런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고넬료의 청에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하는 것조차 그들은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을 통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원하셨습니다.(행 1:8) 그래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고, 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곧 한계에 부딪칩니다. 바로 유대인이라는 한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에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유대인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만 전했습니다. 조금 더 확장한다면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 까지만 전했습니다.

그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자들의 의식을 고쳐야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된 사람이 고넬료와 베드로입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라는 이방인을 통해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고, 또 이 사실을 당시 최고의 지도자인 베드로가 증언해 주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뜻에 따라 고넬료와 베드로는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게 하는 십자가의 원수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럴 수 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정통인 양 주장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당시에 로마 군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은 유대인 가운데만 있을 것이라는 편협한 생각 속에 매어 있었습니다.

요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살아 갑니다. 자기의 좁은 판단을 가지고 살아 갑니다. 미리 “저 사람은 믿을 수 없을 거야” 또 “저 사람은 믿을 사람이야” 이렇게 단정 짓습니다. 전도할 때도 관상을 보고 전도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만 골라 가면서 전도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중에 열매를 보면 상상도 못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게 되면 나타나게 되는 특징들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뛰어 넘어서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지는 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복음 뿐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새롭게 거듭나면 사람 보는 눈이 거듭나서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 나의 선입관이나 첫 인상 때문에 혹 정죄하고 외면한 사람이 있습니까? 교제하기를 피하고 상종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에는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양자 삼을 마음을 가졌던 것은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정말 십자가를 통과한 성도는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요. 십자가의 복음은 사람 보는 눈을 바꿉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의 능력으로 사람 보는 눈이 새롭게 바뀌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방인은 구원 받을 수 없다는 편견이 십자가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는 편견이 그 사람의 인생 평가로 결정지어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입견 때문에 사역이 작아질 때도 참 많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은 그 미워하는 사람이 예수님처럼 보입니다. 그래야 선입견을 깨뜨리고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십자가의 복음으로 눈이 열리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