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20년 12월 06일)
본문: 출애굽기 20:13
제목: 살인하지 말라 (4)
설교자: 정창송 목사
살인하지 말라/You shall not murder. (출20:13)
십계명 강해 스물 한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계명 중에서 여섯 번째 계명으로 살인을 금하시는 계명입니다. 오늘은 십계명에서 말하는 “살인하지 말라”는 이 말 속에 내포되어 있는 살인의 신약적 의미와 우리가 이 6계명을 지키기 위해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무관심은 간접 살인 입니다: 우리는 “살인하지 말라”는 이 6계명의 말씀은 나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성경은 내 손에 피를 안 묻혔다고 살인 안 한 것이 아니라 말씀합니다. 신약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도전하는 6계명은 우리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6계명의 말씀은 단순하게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는 그런 단편적인 일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인에는 직접적인 살인도 있고 간접적 살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은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이 6계명 안에 들어 있는 계명의 참된 뜻입니다. 누가복음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 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돌보아 준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칭찬하십니다. 그러면서 참된 이웃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선한 사마리아인과 대조를 이루는 두 부류가 나오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입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난 이웃을 의도적으로 보고도 그냥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나와 상관 없는 일로 보았거나 혹은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결코 살인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문자적인 적용을 하면 나름대로 합리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지 않음은 하나님 앞에서는 간접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어디까지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을 선한 사마리아인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에서 멀어져 가면 그 때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이 무관심하게 되고, 무관심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살인을 방조하는 간접적 살인을 범하게 됩니다. 사랑 없는 곳에 죽음의 영이 역사하고 사랑이 식어질 때 살인이 늘어나고 사랑이 식어질 때 고귀한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죽음의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계명에서 말하는 이 살인은 직접 살인은 물론이고 간접 살인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제사장과 레위인이 보였던 그 무관심한 태도를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별것 아닌 것일 수 있으나 히브리적 관점으로 보면 무관심은 죄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사마리아인이 돕지 않았다면 강도 만난 사람은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강도 만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무관심으로 누가 죽던 말던 나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어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되면 그것이 간접 살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붙들고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지나친 자기 사랑은 무관심을 초래해서 6계명을 범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자기 사랑은 이기심의 출발이고 자기에게만 너무 집착함으로 자기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병적인 자애는 다른 사람을 해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과하게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니까 다른 사람과 충돌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까 살인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충돌이 잦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나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도 중요하고, 내가 존귀한 것만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존귀하다 라고 하는 균형 감각이 있을 때 우리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삶 자체가 살인을 낳는 수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무관심이 낳는 살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 성경이 관심을 갖고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이 적극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칫하면 그 무관심이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갖게 되고 그 무관심이 살인을 낳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불량 식품을 만들어 팔거나, 환경을 오염시켜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게 하는 일도 살인 행위와 같습니다. 기업주가 돈만 벌려고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다가 사람이 죽는 것도 역시 살인입니다. 이기심이 무서운 것은 나를 너무 생각하다가 다른 사람을 제거해 버리고 결국 나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문제, 자신의 약점은 알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은 받아 주시지 않는지에 대해서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인은 자기의 생각과 주장에 집착한 것입니다. 자기를 돌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것입니다.
창4:6에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물을 때 가인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가인은 마침내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 하나님에게 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왜요! 모든 것이 자기 생각대로 돌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착, 자기 고집이 너무 강한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자기 욕망이 너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마침내 가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혹 우리의 무관심한 태도로 인해 나도 모르게 간접적 살인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축복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옵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성을 기가막히게 이용할 줄 압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마음이 걸리는 것이 있다면 빨리 해결하셔야 합니다(마5:23-24) 만일 6계명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어떤 죄들이 생각이 나시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 받는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