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하면서 가장 마음이 상하고 아팠던 것은 무례히 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실수할 때가 있고 부끄러운 모습이 노출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실수와 잘못을 지적하고 나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인격을 건드리는 것은 참 참기 힘들었습니다.
바울은 사랑장이라고 하는 고전13장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아가페의 사랑의 특성을 15가지로 정의 하면서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5절) 라고 말합니다. 제가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아이들에게 실수한 것 중의 하나도 이 “무례히 행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고 욱박지를 때 아이들이 엄청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저는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중은 사랑의 기술이며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 욕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 원합니다. 사람은 존중 받을 때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을 경험하게 되며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개나 고양이는 던져준 갈비 뼈다귀에 꼬리를 흔들며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인간만은 집어 던져준 고깃덩어리를 결코 먹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멸시 받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존중이 소중한 것은 존중이란 중요시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존중은 상대방을 가치있게 여길 때 또 존귀하게 여길 때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존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그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존중하며 존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는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존중히 여길 때 나타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가르친 학생 가운데 아버지가 대학교 교육학 교수인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의 제자 중의 한 여학생이 심한 척추가 굽어진 장애우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까이 가도 피하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심한 열등감으로 인해 늘 어두웠던 학생이 변치않는 교수님의 사랑과 다른 학생들과 동일한 모습으로 존중해 줌으로 인해 마음 문을 열고 치유 받아 장애를 뛰어넘는 멋진 학생으로 변화되었다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존중의 능력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좋은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가 이해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를 형성할 때 인간은 비로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존중은 좋은 사랑의 관계를 맺는 비결입니다. 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존중이지만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경멸과 무례히 행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처음 대할 때는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주 만나고 서로 익숙해질 때 생깁니다. 익숙하면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무시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이일 수록, 가까운 관계일수록 어느 정도의 안전거리를 유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의가 바로 안전거리입니다. 성숙한 사랑은 예의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입니다. 존중은 좋은 관계를 맺는 하나님의 식입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