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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두 가지 반응

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8월 12)

본문: 사도행전 13:42-52

제목: 복음에 대한 두 가지 반응

설교자: 정창송 목사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13:43)

사도행전 강해 50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들은 두 종류의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는지를 살펴봄으로 복음을 향한 올바른 신앙적 자세가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1.은혜의 참된 뜻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실 비시디아 안디옥은 바울과 바나바가 처음 간 곳입니다. 전혀 아는 사람도 없고 서로가 처음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42-43절)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 보았지만 사도 바울의 설교는 내용면에서 보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한 복음의 메시지 이였기 때문에 실은 유대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안식일에도 또 와서 설교해 달라”고 청함을 받은 것을 보면 분명히 감동을 받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44절에 보면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라고 할 만큼 큰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와 역사를 듣고 싶어 한다 라는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무엇인가 많이 배웠다고 하나님 말씀 제쳐 놓고 딴소리를 했다고 하면 이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언어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으려고 하는 탁월한 강연자나 이야기 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흥은 설교자가 세상의 잡다한 지식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떠나간 교인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 오게 하는 길은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나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할 때 무슨 기적이나 이적을 행했다 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을 뿐인데 사람들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복음에 감동을 받습니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롬1:16) 복음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깊이 체험한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이제 앞으로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할지 대단히 중요한 당부의 말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43) 바울은 그들이 율법주의에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다시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빠져서 그들이 새롭게 경험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의 삶을 상실할까봐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라” 이렇게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은혜란 하나님에 의해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을 말합니다. 특별히 은혜란 죄사함 곧 하나님의 용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용서는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용서는 사랑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깨달을 때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지금 바울은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총과 율법으로 불가능했던 의롭다 함을 받았다 라고 이야기하며 이제 새롭게 은혜를 경험한 비시디아 안디옥 성도들에게 기쁨과 감사를 잃지 말고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당부하며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천국 가기 위해서 오늘도 예배를 드리고 충성 봉사하며 교회를 섬기시는 것은 아니십니까? 잊지 마십시요. 천국은 값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천국은 행위나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이 “항상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말은 천국을 가기 위해서 사는 인생을 살지 말고, 천국에 간자로 살라는 말인 것을 아시고 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 가운데 기쁨과 감사함으로 자유함을 마음껏 누리시는 복된 주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52절)

2.복음은 영적 키질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자 큰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일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복음을 듣고 기뻐했지만(43,48절) 다른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비방하고 박해했습니다.(45-50절) 여기서 우리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복음은 구원의 복된 소식이지만 그러나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염소와 양이 분리되듯이 신자와 불신자가 나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대한 반응이 자신의 신앙의 영적 상태와 영혼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은 한번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저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 아닌 사람”으로 몰아 부쳐서는 안된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8절에 보면 하나님의 택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백성은 언젠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복음은 최후의 반응만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죽기 직전에 단 한번의 신앙 고백을 통해 영생의 복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포기하거나 단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필 것은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의 반응입니다.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51절) 이 말은 저주했다는 말이 아니고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이지만 그러나 아직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전도 대상이다 이런 뜻입니다.(마18:17)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가 듣고 싶어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복음이 바로 전해지면 거기에는 반드시 부흥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더불어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신자와 불신자가 나뉘어지는 역사도 나타납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