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5월 20일)
본문: 사도행전 9장 32-43절
제목: 믿음의 힘
설교자: 정창송 목사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행9:40,42)
사도행전 강해 38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순회 복음 전도 사역 도중에 행한 두 가지 기적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적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 나타나는가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베드로의 믿음: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Acts)을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들의 행적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28장으로 되어 있는 사도행전은 크게 둘로 나누어 집니다. 전반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에 관한 이야기이고(1-12장), 후반부는 바울을 중심으로 한 선교 이야기입니다. (13-28장)
특별히 오늘 본문 32절을 보면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베드로가 침상에 누운 지 8년이 된 ‘애니아’라 하는 한 중풍병자를 고치는 기사가 나오는데(33절), 그를 보고 베드로가 지금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라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34절). 베드로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애니아가 그 자리에 일어나 앉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베드로가 분명히 말합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34) 지금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애니아를 고쳐 주신다는 성령의 깊은 감동을 받았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음성을 들었는지, 아니면 환상을 보았는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애니아를 보는 순간,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신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중풍병자를 보면서 “네가 좀 나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고 담대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베드로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애니아를 낫게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님이 치유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낫게 하신다는 확신이 왔을 때, 그 사실을 분명히 믿고 순종했습니다. 베드로는 애니아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정돈하다”라는 헬라어 “스트론뉘오”는 부정과거 명령법으로 긴급성을 동반하는 특별한 명령으로서 지금 당장 일어나서 “준비하라, 펴라, 깔라”고 촉구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처리하다, 정리하다”라는 완전히 치유되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 꼭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그 단계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음을 가지고 입으로 선포할 때 나타난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루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그래서 마음으로 믿기만 하는 것은 반쪽 신앙입니다.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그 믿음이 온전해져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요. 요셉의 꿈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요셉이 그 꿈을 꾸고 마음에 담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요셉이 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할 때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또 성령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실 때 확신이 생기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고 입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통해 기적을 창조하십니다. 잊지 마십시요. 참 믿음은 기록된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2. 사랑과 섬김의 삶이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이어서 본문 36절에 보면 욥바에 사는 다비다 라고 하는 여제자가 나옵니다. 다비다는 아마 옷을 만들어서 팔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39절). 그래서 좋은 바느질 솜씨를 가지고 참 많은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았던 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그만 병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은혜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은 그녀의 시체를 씻어 다락방에 뉘어 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욥바에서 가까운 룻다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속히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비다를 살려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36-39절).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병들어 죽기 전에는 도움도 청하고 기도 요청도 하지만 죽으면 다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욥바에 있는 사람들은 다비다가 죽었는데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오게 한 후 장례 예배를 인도해 달라 부탁하지 아니하고 시체를 깨끗이 씻어서 다락에 눕혀 놓고 베드로에게 살려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욥바에 사는 성도들의 주를 향한 놀라운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은 죽은 다비다를 예수님께서 살리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리신다 라는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이 생깁니다. 그러면 욥바의 성도들은 왜 죽은 다비다가 천국에 가서 안식을 누리고 있을 것을 알면서 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비다는 살아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그 욥바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건 사명의 복입니다. 그리고 다비다가 다시 살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42절)
성경에 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7번 나옵니다. 그런데 그 기사들 중에 상당수가 정성껏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을 베푸는 가정에 다시 살아나는 은혜의 역사가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랑으로 섬기고 베푸는 것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며 이것이 이 땅을 얼마나 복되게 하는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제를 많이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졌다고 생각을 하셔서 갚으신다 라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요. 사랑과 섬김과 베품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가장 큰 투자입니다. 그런 믿음의 삶 속에 하나님은 특별히 구원의 은총으로 함께 하십니다.
다비바의 아름다운 선행과 삶을 본 베드로가 감격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40절) 그런데 베드로가 다비다를 등 뒤에 두고 기도를 합니다. 그 증거가 “돌이켜”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철저히 하나님에게만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왜 그렀습니까?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다비다를 다시 살린 것입니다. 이 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35,43절).
말씀을 마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믿고 입으로 선포 하십시요. 그 일이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예수의 이름에 생명과 능력이 있음을 아시고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요. 그 믿음을 통해서 오늘도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참된 제자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런 믿음의 삶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