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참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까운 형제 간에 서로 상처 받는 일이 있었는데 한참 손위인 형제가 나이 어린 형제를 용서하며 축복하며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서… 아! 저게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구나!! 하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볼 때는 서로에게 모두 연약하고 불평할 수 있는 요인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손아래 동생을 품는 모습을 보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기도 시간에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데 제 마음 속에 마태복음 12장의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바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 마태복음 12장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때로 성령의 감동으로 또 믿음의 역사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하고 의로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 후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무너지고 이전보다 더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참 많이 보아 왔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어느 날 아이티 선교에서 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말씀 속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마태복음 12:43-45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쉴 곳을 얻지 못하자 자기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 보니까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함으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 믿음으로 착한 행실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무장하고 말씀으로 채워져 있지 아니하면 악한 마귀가 다시 역사할 때 이기지 못해 이전보다 더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마12:43) 여기서 “물 없는 곳으로”는 “말씀이 없는 곳”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붙잡고 기도하라고 했더니 정말 그 후에 모든 것이 잠잠해 지며 큰 풍파가 지나갔습니다.
금주에 무슨 칼럼을 쓸까 산책을 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걷다가 이 일이 생각이나서 글을 씁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제가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깨달음의 즐거움입니다. 어떤 문제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 때 치유가 일어나고 기쁨이 충만해 짐을 느낍니다.
성경은 깨달음의 은혜를 아주 소중히 여깁니다. 그 이유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기 때문입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 그래서 깨닫지 못하면 어려움을 당하고 망합니다. 깨달을 때 풍성한 열매을 맺게 됩니다(마13:23)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음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말씀의 소중함과 무엇보다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달음이 많은 영혼을 살리고 본인 자신도 영적인 눈이 열림을 경험하는 귀한 은혜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말씀의 깨달음이 주는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한 주 였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