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에 놔두고 마음에 간절한 바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스러운 예배를 남은 목회 사역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강단에 올라가기 전에 하나님께 나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여,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오늘도 예배 가운데 경험하게 하소서”
솔직히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영은 “성령 안에서의 예배”(worship in Spirit)이며, 진리는 “말씀 안에서의 예배”(worship in Truth)를 뜻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만지심 속에서 강력한 말씀의 선포와 함께 드려져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의 예배”는 이성과 지성으로만 드리는 예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성과 지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흥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감정이 뜨거워져서 잘못된 서원들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감정이 뜨거워지는 것보다 냉철한 이성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해서 사리 분별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불, 성령의 임재가 이성과 감정에 균형있게 임해야 신비주의나 바리새인의 외식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안에서의 예배”는 성경 말씀에 기초한 예배를 의미한다 생각합니다. 아무리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는 예배라 할지라도 말씀이 없는 예배는 결국 뜨거움과 열정으로 끝나버리고 말지 생명과 변화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받은 자들이란 자부심이 지나쳐서 그 자부심이 점점 형식화 되고 외식화 되어서 입술은 경배하지만 마음은 식었습니다. 바리새인의 예배가 바로 이런 식이었습니다. 말씀은 받았는데, 불꺼진 외식으로 포장된 말씀이 된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차거운 예배가 될까 참 두렵습니다.
왜 예배를 드리면서도 심령이 답답하고 목마른가?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답답함, 목마름은 사라지지 않는가? 바른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면 더 이상 답답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뚫리고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17살 때 그 은혜를 경험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니까 제 경우에는 제일 먼저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예배란 예배는 다 참석하였습니다. 주일 예배가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그리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목사님의 메시지가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남은 목회에 많은 바램이 있지만 정말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회복을 간절한 마음으로 구합니다. 이런 예배를 사랑하는 교우들이 경험하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모든 죽었던 것을 살리고 치유하며 회복합니다. 예배가 정말 중요합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면 더 이상 답답함이나 더 이상 목마름은 없을 것입니다.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