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톤 한인 장로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9월 02)
본문: 사도행전 14:11-18
제목: 높임을 받을 때 오는 위험
설교자: 정창송 목사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이라(행14:14-15)
사도행전 강해 53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를 극적으로 치유했을 때 이 놀라운 광경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이 두 사도를 신으로 여기고 제사를 지내려 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높임과 존경을 받을 때 이것이 왜 무서운 유혹이며 이 때 취해야 할 성도의 바른 자세가 무엇인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우상화의 위험: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동안 위험한 일을 말할 수 없이 많이 겪었습니다.(고후11:23-27) 그러나 사도 바울이 겪은 위험 가운데 제일 큰 위험은 바로 성공했을 때에 다가오는 유혹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를 고쳤습니다. 그랬더니 루스드라의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사도를 신으로 생각했습니다.(11절) 그래서 바나바를 제우스,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부르며 신으로 여기고 제사를 하려고 하였습니다.(12-13절)
사실 이 지역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이렇게 높이게 된 것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루스드라에 왔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신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을 냉대하고 배척하다가 진노한 두 신은 루스드라를 멸망시켜 버리고 말았다는 신화가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신들을 잘못 대접했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차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를 일으키는 바울과 바나바를 보면서 옛날의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다시 내려온 것으로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았다면 그들의 제사와 경배를 그대로 받으면서 그 특권을 즐기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도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사도는 그 말을 듣자 마자 소리를 지르고 옷을 찢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이런 일을 만났을 때 옷을 찢거나 소리를 질러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었다면 어느 때 그러셨습니까? 우리는 보통 너무 억울하거나 원통한 일을 당할 때에 옷을 찢거나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과 바나바는 정반대로 사람들이 두 사람을 신으로 떠 받드는 순간에 이런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옷을 찢을 것까지 있겠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이 무엇이 그렇게 원통한 일이라고 옷을 찢고 소리를 지릅니까? 그것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목하고 신처럼 떠 받들고 칭찬할 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일인가를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5절)
2. 우상화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 두 사도는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기에서 “성정”이라는 단어는 본래 헬라어에서 “인간적인 본성 곧 인간의 죄성과 연약성을 말할 때 쓰여지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평범한 죄인이요 연약한 사람입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 외침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신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 사람들이 자기를 신처럼 떠 받들 때 거기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두었다면 바울의 사역은 아마 거기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루스드라에서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 다음에는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음에 처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19절) 이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평판에 흔들리거나 속으시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형통함과 평탄함이 있을 때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주목할 때 정말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우리를 주목할 때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위험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높여 주려고 할 때 참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 때가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기 쉬운 순간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하며 높여줄 때가 왜 인생의 위기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일종의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는 한마디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하지 말고 스스로 주인이 되지 말라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하심은 한마디로 죄를 멀리하고 짓지 말라하심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사탄이 시험할 때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습니다. 사탄이 이 두 번째 시험에서 노린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헛된 영광에 눈 어두워 예수님의 사명 곧 십자가를 잊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 교회는 이 사탄의 두 번째 시험에 빠졌습니다. 헛된 영광에 눈이 어두워 성전에서 뛰어 내리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살아 가면서 하나님의 위치에 들어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모든 영광을 오직 주께 돌릴 수 있는 믿음의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수많은 위험을 당했지만 최고의 위험은 우상화의 위험입니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날 때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할 때가 인생 최고의 위험입니다. 그럴 때 옷을 찢으면서 막으셔야 합니다.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할 때 틀림없이 여러분에게 천국이 열릴 것입니다.